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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콰도르 소식] 2024년 4월 제33호-에콰도르에서
작성자 : 천주교서울국제선교회(sicms1004@gmail.com) 작성일 : 2024-04-25 조회수 : 9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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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콰도르에서 


희망의 순례자 


 

이용우 요한 베르크만 신부



우리 가톨릭 신자들은 언제나 성지를 방문하고자 하는 순례의 꿈을 안고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돌아가시고 부활하신 예루살렘뿐 아니라, 세계 각지의 성모 성지, 또는 순교자들이 죽음으로 믿음을 증거하며 거룩한 피를 흘린 순교 성지를, 우리 가톨릭 신자들은 언제든 기회가 되는 대로 순례하고 싶어합니다. 그 목적은 단 한 가지, 현장 체험을 통해 믿음을 강화하기 위한 것입니다.


순례는 여행과 다릅니다. 특히 관광 여행에 한정하여 얘기할 때, 그것이 여가를 선용하기 위한 것이든, 유명한 장소를 직접 목도하기 위한 것이든, 시간을 내고, 교통편을 챙기고, 필요한 물품을 준비하는 데까지는 여행이 순례와 비슷할지 모르지만, 목적은 전혀 다릅니다. 목적이 다르기에 마음가짐도 당연히 다르겠지요. 88올림픽을 즈음하여 해외여행이 자유화된 이후 순례도 많이 활성화되었지만, 성지 순례가 유명 관광지 여행과 함께 기획되고 유인된 탓에 순례의 목적이 혼란스러워진 점이 있는데, 우리 자신이 어떤 목적으로 순례를 떠나든 간에, 순례가 가진 본래의 목적은 변할 수 없습니다.


순례는 가톨릭 신자만 가는 것이 아닙니다. 개신교 신자들도 많이 가지만, 이슬람 신자들에게 메카 순례는 일생의 꿈이자 의무이고, 일찍이 현장법사는 죽음을 무릅쓴 20년간의 인도 순례를 통해 수많은 불경을 중국에 가져와 불교를 전파하는 일등공신이 되었습니다.

저 역시 국내에서 살 때나 해외에서 유학생활 또는 선교사목을 하면서 수많은 장소를 여행해 보았습니다만, 돌이켜 보면 순례보다는 관광을 위한 여행이 더 많았음을 솔직히 고백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또한 순교자들의 순교지나 성모님의 발현지 등 많은 순례지를, 관광하듯이 가본 적도 적지 않음을 또한 고백합니다. 특히 교우들을 인솔하는 성지 순례는, 앞치닥거리와 뒤치닥거리에 진이 다 빠져서 정작 저 자신은 순례에 집중하지 못한 아쉬움이 늘 남아 있습니다.


이렇듯 종교인들은 누구나 기회가 되는 대로 종종, 또는 적어도 한 번쯤은 하고 싶어하는 순례는, 우리의 가슴을 설레게도 하고 마음을 진지하게도 합니다. 역사적으로 볼 때, 한 번의 순례로도 인생을 완전히 바꾸어 새로운 사람이 된 경우도 참 많습니다. 일찍이 로욜라의 성 이냐시오는 회심 후 예루살렘 성지를 감행한 뒤 -당시에는 무슬림들이 지배하던 시대라 매우 위험했는데도-, 자신을 온전히 주님께 봉헌하고자 하는 결심을 하게 되었고, 끝내는 동지들을 모아 예수회를 창립하였습니다.


순례에는 우리가 설렘과 진지함만 가슴에 안고 가는 것이 아니라, 변화에 대한 희망도 함께 안고 갑니다. 그러기에 순례의 여정에서 변화를 위한 보속과 속죄 행위를 빼놓을 수는 결코 없지요. 순례가 힘들수록 변화에 대한 희망도 비례해지는 면도 있어서, 일부러 힘든 순례를 택하는 이들도 많습니다.


저의 경우 여러 순례들 중에서도 특히 메주고리예 순례가 기억에 남는데, 그 이유는 무지막지한 돌산을 맨발로 오르내리며 기도했기 때문입니다. 돌산을 내려오자마자, 인솔하던 교우들을 팽개치고 고해소로 달려갔지요. 폴란드(추측컨대) 신부에게 고해성사를 봤는데, 제가 성사를 본 후엔 그도 제게 성사를 보았습니다. 순례의 고행에서 얻어지는 회심의 간절함과 속죄의 절실함 앞에서 언어의 장벽은 전혀 문제가 되지 않았습니다. 그런 의미에서, 변화를 희망하는 것도 그 열매를 얻는 것도 순례의 큰 은총이라 할 수 있습니다. 많은 시간과 비용을 들여서 순례를 다녀와 아무런 변화가 없다면, 우리가 무엇하러 순례를 가겠습니까? 그러기에 변화의 열매가 순례의 은총이라면, 그 은총은 바로 변화의 희망에서 이미 시작되는 것입니다.


내년 2025년은 50년이 절반으로 꺾어지는 해이자, 그러기에 교회가 성년(또는 희년)으로 선포한 해입니다. 프란치스코 교황님께서는 이번 성년의 표어를 “희망의 순례자들”로 선포하시며, 가톨릭 신자들뿐만 아니라 전 세계의 모든 인류가, 질병과 전쟁과 기아, 폭력 등의 갖은 문제들에도 불구하고 모두가 함께 순례자의 마음으로 평화와 사랑의 나라로 나아가자는 희망을 제시하셨습니다.


교회가 「로마 미사 경본」의 성찬기도 제3양식에서 자신을 “순례하는 교회”로 묘사하고 있듯이, 우리 가톨릭 신자들은 모두 지상에서 하늘나라로 나아가며 구원받기를 희망하는 순례자들입니다. 저 역시 구원을 희망하는 가난한 순례자로서, 교만하고 죄 많은 현재의 모습에 대해 속죄하고 보속하며, 겸손과 성덕으로 변화되어 수난과 죽음을 통해 인류를 구원하신 주님의 길을 따라 순례하는 삶을 살고자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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