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총과 평화 가득한 세계 성지순례 ⑪
아름다운 성당, 하기아 소피아
김원창 미카엘
아시아와 유럽을 잇는 곳에 튀르키예가 자리 잡고 있습니다. 97%의 영토는 아시아에 나머지 3%는 유럽 대륙에 속해 있고, 성경에서는 소아시아로 표기되는 곳입니다. 튀르키예는 오랜 시간 동안 ‘터키’로 불린 나라지만, 공화국 설립 100주년을 맞아 자국의 발음과 의미에 맞게 국명을 변경했습니다. 유엔도 이를 공식 승인하여 영어식 표기인 Turkey도 Türkiye로 바꾸어 쓰고 있고, 우리나라에서도 ‘터키’ 대신 ‘튀르키예’로 표기하고 있습니다. 사실 ‘용감한 사람의 땅’을 뜻하는 원래 의미와는 달리, 영어식 ‘터키’의 의미에는 부정적 뉘앙스가 들어 있습니다. 칠면조를 뜻하는 터키라는 단어는 미국에서는 어리석은 사람, 비겁한 사람 혹은 겁쟁이를 지칭하는 속어로 쓰입니다. 그러니 좋지 않은 의미를 지닌 영어 단어를 한 나라의 국명으로 오랫동안 써왔던 것도 문제가 될 만한 일이었습니다.
튀르키예는 기원전 18세기부터 기원전 8세기까지는 고대 근동 문화의 한 축이었던 히타이트 제국이 차지했던 땅입니다. 여섯 개의 부챗살 수레를 이끌고 철기 문명을 일으켜 주변 나라를 복속시켰던 히타이트라는 이름은 구약성서의 ‘헷 사람들’이라는 단어에서 유래한 이름이고요. 히타이트 시대 이후에는 알렉산더 대왕이 정복한 헬레니즘 제국의 일부로 편입되었고 연이어 로마 제국의 일부가 되었습니다. 로마 제국이 동서로 갈린 이후에는 동로마 제국 즉, 비잔틴 제국의 중심지가 되었습니다.
그리고 10세기부터 점차 이슬람 신앙으로 무장한 셀주크 튀르크가 이 땅에 조금씩 들어 오기 시작했고, 13세기에는 셀주크 튀르크를 이어받은 오스만 제국이 점차 동로마 제국의 영토를 잠식해 갔습니다. 결국 15세기에 당시 동로마 제국의 수도였던 ‘콘스탄티노폴리스(현재의 이스탄불)’가 오스만 제국에게 함락당하면서 이 땅은 무슬림의 소유가 되었습니다. 이후 16세기에 세계 최강국 중 하나인 오스만 제국은 세계 제1차 대전 이후 점차 쇠락했고, 1923년 터키 공화국으로 재탄생하면서 지금에 이르렀습니다. 튀르키예는 철기 문명이 시작된 곳이고, 헬레니즘 문화의 중심지 가운데 하나였으며, 그리스도교의 중심지였으나 지금은 이슬람 문명으로 뒤덮인 땅인 셈입니다.
그런데 현재 무슬림의 나라인 튀르키예의 가장 중심이 되는 도시 한 가운데서 놀랍도록 아름다운 성당을 만날 수 있습니다. 이 세상 어디에서도 볼 수 없을 정도로 아름다운 성당이며, 누구도 다시는 그렇게 만들 수 없을 그런 성당입니다. 360년 처음 지어졌던 성당은 50년 만에 화재로 소실되었고, 이후 테오도시우스 2세에 의해 새로 지어진 성당도 100년을 버티지 못하고 반란 중에 발생한 화재로 다시 한번 불타버립니다. 두 번째 화재가 일어난 지 5년 후, 당시 황제인 유스티아누스는 새롭게 성당을 건립하기로 했습니다. 건축가 안테미우스(Anthemius)와 수학자 이시도루스(Isidorus)에게 그 일을 맡겼는데, 이들은 그리스도인이 아니면서도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성당을 만들었습니다. 당시 이 성당 건축을 위해 1만여 명의 노동자와 현장 감독 100명이 한꺼번에 일했다고 합니다. 이들은 5,000명씩 나뉘어 건물의 양쪽에서 경쟁적으로 일했는데, 불과 5년 11개월 만에 이 거대한 성당을 완성했습니다.
성당이 완공된 후 유스티아누스 황제는 537년 이 성당의 봉헌 미사 후에 “오, 솔로몬이여! 내가 당신을 넘어섰습니다.”라고 말했다고 합니다. 솔로몬이 지어 주 하느님께 봉헌한 예루살렘 성전을 뛰어넘는 아름다움을 표현한 이야기겠죠. 1,500년 전, 거대하고 아름다운 이 성당 봉헌미사에는 전례 봉사자만 500명이 넘었던 성당의 이름은 바로 ‘성 소피아 대성당’입니다. 성 소피아 대성당의 그리스식 이름인 ‘하기아 소피아’는 ‘거룩한 지혜’라는 뜻으로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호칭 가운데 하나입니다. (“그리스도는 하느님의 힘이시며 하느님의 지혜이십니다.” 1코린 1,25)
속칭 블루 모스크로 알려진 술탄 아흐메트 모스크와 성 소피아 대성당 사이에 있는 술탄 아흐메트 공원에는 언제나 많은 사람이 휴식을 취하고 있습니다. 이스탄불의 나지막한 언덕을 걸어 올라오면 만날 수 있는 술탄 아흐메트 공원은 분수 공원이라고도 불리는데, 공원 한가운데서 뿜어져 올라오는 분수가 참 아름답습니다.
성 소피아 성당을 배경으로, 하늘로 솟아오르는 물줄기와 자신의 모습을 멋지게 찍으려는 사람들을 볼 수 있는 곳이죠. 하지만 성 소피아 성당의 자주색 벽면은 여전히 위용을 뽐내고 있고, 한때 세계에서 가장 큰 돔이었던 성당 지붕은 겨우 SNS 사진의 배경으로 쓰기에는 너무나 위대한 건물입니다. 사실 세상에는 대단한 규모를 가진 성당이 많고, 다른 곳에서 찾아볼 수 없는 특별한 의미를 지닌 성당도 많습니다. 그런데도 세계 8대 불가사의라고 불리고 지금은 성당으로 쓰이지 않으면서도 그 거룩함을 잃지 않는 이유는 무엇인지, 오직 소피아 성당만이 가진 독특한 아름다움과 불가사의한 매력은 무엇인지 알기 위해서는 그저 성당 내부에 한 걸음만 발을 들여놓으시면 됩니다.
밖에서 보이는 커다란 돔을 생각하며 들어서게 되는 소피아 대성당의 평면은 놀랍게도 거의 정사각형에 가까운 직사각형입니다. 네 개의 거대한 기둥이 건물의 하중을 견디고 있을 뿐 아니라 네모난 공간에 작은 기둥이 열주로 늘어서 있습니다. 우리가 익히 들어서 아는 바실리카 식 모양을 가진 성당인 것이죠. 그런데 성당 문을 지나 제단 앞으로 딱 한 발 들어서기만 하면, 눈에 보이던 네모난 성당의 모습은 사라집니다. 내 움직임에 따라 네모난 공간이 원형의 공간으로 바뀌거든요. 마치 2차원의 세계에서 3차원의 세계로 들어온 듯, 왠지 복잡해 보이는 눈높이의 구조물들은 사라지고, 자연스럽게 눈을 하늘로 들어 올리게 됩니다.
이런 착시 현상은 돔 주위에 뚫린 40개의 창에서 쏟아져 들어오는 빛 때문입니다. 이 빛은 거대한 돔마저 하늘의 일부처럼 보이게 하며 성당에 들어선 우리를 우주 한 가운데 밀어 넣습니다. 처음 건립되었을 때의 돔은 황금 모자이크로 덮여 있었다고 합니다. 만약 지금도 그 황금 모자이크가 남아 있었다면, 세상 어디서도 느낄 수 없는 천상을 맛볼 수 있었을 텐데요. 당시 비잔틴 제국의 역사를 기록한 프로코피우스(Procopius)는 성 소피아 성당에 대해 이렇게 묘사했습니다. “이 건물은 온 나라 위에 높이 솟아 있다. … 어떤 말로도 이 건물을 그려낼 수는 없다.
이 성당에 들어서면 이곳이 하느님의 힘으로 만들어졌다는 것을 깨달을 수 있다.”라고 말입니다.
성당은 하느님의 거룩함을 이 세상에서 보여주는 건축물입니다. 그분의 집을 세상 한 가운데 지은 것이니까요. 그런 의미에서 성 소피아 성당은 가장 훌륭한 성당이라고 말할 수 있겠습니다. 그분의 집에서 느낄 수 있는 거룩함을 내 안에 모실 수 있고, 거룩함으로 가득 찬 마음으로 세상의 빛이 되도록 파견되는 성체성사의 신비를 건축의 언어로 표현하고 있거든요. 제1차 세계대전 후 1923년 오스만 제국이 무너진 후, 지금의 튀르키예 공화국이 수립되었을 때, 유럽의 국가들은 대성당의 반환과 모스크에서 성당으로 종교적 복원을 해야 한다고 튀르키예 정부에 요구했습니다. 하지만 1934년 튀르키예 공화국은 이 대성당을 인류 모두의 공동 유산으로서 남긴다는 의미로, 박물관으로 지정했고 성당도 아니고 모스크도 아닌 “아야 소피아 박물관(Ayasofya Musesi)”으로 남겼습니다. 그리고 내부에서는 어떤 종교적 행위도 할 수 없도록 했습니다.
그런데 팬데믹이 한참이던 2020년 여름, 세계를 놀라게 하는 뉴스가 발표되었습니다. 튀르키예의 수도인이스탄불에 자리 잡은 아야 소피아(Ayasofya 튀르키예어; 라틴어로는 산타 소피아 Sancta Sophia, 곧 성 소피아 성당을 일컫는 명칭)가 더 이상 박물관으로 사용되지 않고 다시 모스크로 사용된다는 것이었습니다. 유네스코에서도 세계문화유산 지정을 취소를 검토하겠다고 으름장을 놓았지만 그 결정을 바꿀 수는 없었습니다.
현대화의 물결 아래 종교적 갈등을 일으킬 소지가 있어서 그동안 박물관으로 사용되었던 소피아 성당은 결국 전 세계를 뒤흔든 팬데믹을 틈타 모스크로 전환되었습니다. 전 세계 여러 종교 및 정치 지도자는 이 같은 결정을 취소해 달라고 요청했으며 프란치스코 교황님도 “내 생각은 이스탄불에 가 있다. 산타 소피아 생각이 나 몹시 괴롭다.”라고 심경을 밝힌 바 있습니다. 하지만 그러한 모든 목소리가 그들의 판단을 바꾸지는 못했습니다. 물론 모스크로 바뀐 이후에도 이슬람교도뿐 아니라 관광객과 순례자에게 아야 소피아의 일부를 개방하고는 있으나, 이제는 모스크의 일부라는 생각에 마음 한쪽이 서글퍼집니다.
한편으로 생각해 보면, 이런 시대착오적 결정도 성 소피아 성당이 견디어야 하는 과정일 수도 있겠습니다. 이미 한번 겪었던 아픔을 다시 겪게 된 점이 더할 나위 없이 아쉽지만, 성 소피아 성당이 가진 아름다움과 거룩함이 훼손되는 것은 아니라고 애써 생각해 봅니다. 사도 바오로의 발자취를 따라 소아시아 순례를 할 때면 이스탄불을 꼭 거쳐야 하고, 성 소피아 성당을 빼고 이스탄불을 지날 수는 없습니다. 비록 미사를 드릴 수도, 무릎 꿇고 앉아 성호를 그을 수도 없지만 하느님의 지혜를 뜻하며 그리스도를 의미하는 이름을 가진 이곳에서 잠시 마음속으로 기도해 보시길 바랍니다. 그것만으로도 충만한 기쁨을 느끼실 수 있을 테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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